조직 커진 만큼 의사결정 방식도 민주적으로 바뀌어야
[인터뷰]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IT 담당 부위원장
2022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 사태, 2023년 카카오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 등 최근 IT업계가 많은 논란을 겪고 있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IT 담당 부위원장은 이런 논란의 바탕에 수직적이고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경직적인 조직문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세윤 부위원장은 이런 문화를 개혁하고 구성원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 중 하나는 ‘임금협약 연대’다. 임금협약 연대는 화섬식품노조 소속 IT 관련 7개 노동조합 32개 계열사가 임금 협약에 관한 협의체를 만들어 임금협약과 관련한 사항들을 서로 긴밀하게 공유하는 것이다. 오세윤 부위원장은 이 협의체를 통해 IT업계에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 내고 싶다고 설명한다. 지난 12월 14일 판교 네이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오세윤 부위원장을 만나 한국 IT산업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한 임금협약 연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봤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IT 담당 부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연이은 악재 배경엔 경직된 조직문화
실무진 의견 수렴 가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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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엔 네이버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대두됐고, 2023년엔 카카오에서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이 번졌다. IT업계에 왜 연이어 악재들이 터지고 있다고 보나?
악재들의 바탕엔 IT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재 IT업계 대부분은 여전히 창업자가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한국 IT산업은 초창기에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소수가 창업한 후, 그 소수가 빠르게 결단·실행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이에 따라 회사가 성장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네이버, 카카오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빨리 성장하다 보니 어려운 시절 동고동락했던 초창기 구성원들끼리 똘똘 뭉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회사 규모가 소수의 의사결정만으로 굴러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는데도 여전히 소수의 경영진이 경영 의사결정을 독차지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일단 소수의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경영하니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만들어져 조직문화 또한 경직된다. 소수의 독단적 결정으로 성과가 나도 문제가 생긴다. 결정했던 소수 경영진이 그 성과에 관한 대가를 독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 사항에 대한 최종 판단은 경영진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가 빨리 변하는 IT산업에선 이용자와 가장 빈번하게 접촉하는 실무진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용자들이 겪는 불편과 요구사항 등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은 경영진이 아니라 최전선에서 기획·개발하고 있는 실무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하되, 실무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대부분의 IT 기업에선 그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그러다 보니 수직적 조직 문화로 인한 직장 내 괴롭힘이나, 독단적인 경영 의사결정으로 인한 CEO 리스크 같은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7개 지회 모여 임금 협약 관해 논해
목표는 ‘공정한 성과 배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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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협약 연대’를 만든 것인가?
그렇다. 먼저 ‘임금협약 연대’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고 싶다. 화섬식품노조에 소속된 네이버지회, 넥슨지회, 스마일게이트지회, 엔씨소프트지회, 웹젠지회, 카카오지회, 한글과컴퓨터지회 총 7개 지회의 32개 계열사가 임금 협약에 관한 협의체를 만들어 서로의 임금 협약에 관한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IT산업 내 ‘공정한 성과 배분 구조’를 만들고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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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목표가 공정한 성과 배분 구조인가?
물론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IT회사 대부분은 연봉제로 임금을 주고 있다. 따라서 평가에 따라서 연봉이 많이 달라진다. 그런데 IT업계에는 신흥 기업들이 많다 보니 성과 배분에 관한 평가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여기에 아까 말한 경영진 일부가 경영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문제가 겹친다. 연봉을 얼마나 줄 것인지, 성과급은 줄 것인지, 성과급을 준다면 얼마나 줄 것인지 등을 일부 경영진과 조직장 정도가 독단적으로 결정한다. 물론 경영진 나름대로는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보기엔 “이게 맞아?”하는 의문이 계속 드는 거다. 소통 없이 소수가 임금을 결정해 버리는 구조이다 보니 노동조합이 없는 곳은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더 심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이 IT업계에선 매년 문제가 돼 왔다.
이런 임금 결정 구조는 노동자의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이 된다. 내가 일을 열심히 했고,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있으면 노동자로선 회사가 그것들을 보상해 주리라는 기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누적되면 직원들은 일할 동기를 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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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임금협약 연대’를 만들었나?
지금이 IT업계에겐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간은 독단적이고 아이디어 좋은 소수의 리더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탑다운(Top-down) 방식의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기업을 키웠다. 작은 조직일 때는 효과적인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커다란 조직에선 먹히지 않는 방식이다. 이제는 임금이든, 사업이든 구성원의 의견을 듣고, 이를 잘 종합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본다. 그렇게 변해야만 한국의 IT업계가 다른 힘 있는 글로벌 기업과도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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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협약 연대는 어떻게 진행되나?
화섬식품노조는 산별노조다. 그런데 모든 교섭에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IT업계에선 IT 사업장 노동조합 간부들이 다른 IT 사업장 노사 교섭에 들어가서 함께 교섭을 해오곤 했다. 이런 식으로 연대를 하면서 의제를 공유하다 보니 각 노동조합이 서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중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 공정한 성과 배분에 관한 고민이었다. 회사가 다르고, 회사마다 문화·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임금 배분에 관한 구조를 완전히 통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연대해서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 ‘임금협약 연대’의 실마리였다.
모든 회사에 같은 임금 배분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노사 간 대화를 통해 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우리 목표다. 아울러 임금에서부터 공정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다른 사항에도 이식해 보자는 것이 또 다른 목표이기도 하다. 결국, 노사가 서로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임금 등에 관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
일단은 임금협약 연대가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문제의식과 목적만 명확하게 밝혀놓은 상태다. 이제 곧 IT업계 기업들이 임금협상에 들어간다. 임금협약 연대에 참가하는 각 노동조합은 임금협상의 진행 상황을 긴밀하게 공유하면 세부적인 규칙들을 더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IT 담당 부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전체 IT산업 노동조건 견인 목표
작은 사업장 노조 가입 문의도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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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지회 중 카카오에만 150여 개의 자회사가 있다. 혹시 자회사·계열사 등도 이번 연대에 포함되는가?
먼저 우리 화섬식품노조에 가입된 모든 IT 노동조합은 해당 회사의 자회사·계열사 등과 함께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당연히 이번 ‘임금협약 연대’도 당연히 모든 자회사·계열사와 함께 하고 있다. 다만 모든 계열사에 우리 조합원이 있진 않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교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는 계열사도 많다. 그래서 7개 지회의 32개 계열사만이 현재 함께 교섭하는 것이다.
연대에 참가하는 기업들이 IT업계 상위 기업들이다. 계열사 중에서도 작은 회사는 연대에 빠지고 노조가 없는 기업들도 빠진다. 그러면 IT 기업 내 임금 양극화가 강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선언문에 포함됐던 문구 중 하나가 ‘열정페이라는 이름하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IT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연대한다’다. 단체교섭의 산업 내 효력확장 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는 IT산업 내 노동조합을 만들 때 본사노조·정규직노조 등으로 노동자를 차별하지 않았다. 모든 계열사가 가입하게 해서 최대한 모두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임금협약 연대를 통해서도 임금의 양극화가 아니라 IT산업 전체의 노동조건을 견인하는 모델이 되려고 한다.
IT업계는 타 업계에 비해 이직이 잦다. 그래서 한 기업이 노동조건을 크게 올리면 해당 기업으로의 인재 유출이 많아진다. 따라서 사측에서도 회사들끼리 모여 노동조건을 올리는 것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임금이 크게 양극화되기보다는 IT업계에서 노동조합이 얻어낸 성과가 다른 기업에도 어느 정도 공유되는 결과가 생기곤 한다. 실제로 화섬식품노조 차원에서 IT업계의 포괄임금제에 대해 지적하면서 공론화를 한 이후 IT업계 전반적으로 포괄노동제를 사용하는 기업이 대폭 줄었다. 또 2021년 넥슨에서 임금을 대폭 인상한 이후로 IT업계 전반에 도미노 연봉 인상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임금협약 연대를 위한 공정한 배분 구조 구축도 이렇게 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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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계속 말해왔지만 앞으로 화섬식품노조 IT 담당 부위원장으로서 IT산업 내에 구성원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아울러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도 노동조건을 견인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간접적인 방법으론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규모가 작은 곳이라도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분들은 언제든지 화섬식품노조에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다. 현재는 많은 IT 기업들이 화섬식품노조에 가입돼 있다. 여러 가지로 도움을 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김광수 기자
jebo@laborplus.co.kr